[NT:뷰] 연극 ‘12인의 성난 사람들’ 반세기 전 질문이 오늘의 우리에게 묻는다

전시/공연 / 권수빈 기자 / 2025-05-20 14:5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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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극단 산수유

[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극단 산수유가 10주년을 맞아 다시 올린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그간 많은 무대에서 반복 상연되었음에도 여전히 단단한 힘을 가진 작품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킨다. 레지날드 로즈가 1954년 TV 드라마로 처음 발표한 이 작품은 한 소년의 생사 여부가 단 하나의 배심원실에서 결정되는 과정을 따라가며 인간의 편견과 민주주의의 구조적 취약함을 드러내는 고전적 법정극이다. ‘사람의 판단’에 집중하고, 정밀한 구조 덕분에 초연 당시부터 전 세계 수많은 무대에서 꾸준히 재해석돼 왔다.

 

한 소년이 친부 살인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된다. 그의 유무죄를 결정할 12명의 배심원이 배심원실에 모인다. 처음에는 대부분 배심원이 피고를 유죄로 단정하려 하지만 단 한 명의 배심원이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무죄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논쟁이 시작된다. 배심원들은 서로 다른 배경과 편견, 경험을 가지고 있어 의견이 충돌한다. 어떤 배심원은 감정적으로, 어떤 배심원은 논리적으로, 또 누군가는 다수 의견에 따르는 모습을 보인다. 배심원실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토론과 설득 과정을 통해 각자의 편견과 고정관념이 드러나고, 최종적으로 한 사람씩 자신의 입장을 재검토하며 결정을 내려간다.

국내에서는 극단 산수유가 2016년 처음 공연한 이후 매년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꾸준히 무대에 올려왔다. 첫 해에는 월간 한국연극이 선정한 ‘올해의 공연 베스트 7’에 이름을 올렸고, 2017년에는 이데일리 문화대상 연극부문 최우수상을 비롯해 여러 상을 수상하면서 작품성과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이후에도 지역 공연마다 매진 사례가 이어지며 산수유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극단 산수유


작품이 꾸준히 관객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극적 구성의 탄탄함만은 아니다. 나이·배경·관점이 모두 다른 12명의 배심원이 하나의 사건을 해석하는 과정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과 자연스럽게 겹쳐 보인다. 빠르게 결론을 내리고 싶어 하는 조급함, 개인적 경험을 객관적 판단으로 착각하는 오류, 집단 안에서의 비겁함, 다수 의견이 갖는 폭력성이 배심원실 안에서 드러나고, 관객은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류주연 연출이 “반세기 전 질문이 지금 한국에서 더 선명하다”고 말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2025년 10주년 공연은 그간의 공연 경험이 응축된 형태로 무대 위에 나타난다. 대부분 1대, 2대 캐스트가 다시 참여하면서 연기 톤과 호흡이 안정적이고, 새롭게 합류한 배우들이 그 틈새에서 긴장을 만들어낸다. 무대 미장센은 과도한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기존 정서를 유지하면서 인물의 동선을 보다 명확하게 정리했다. 이전 공연들이 날 선 대립으로 중심을 잡았다면 올해 공연은 인물 간의 작은 흔들림과 멈춤을 더 신중하게 다루는 방식이 눈에 띈다.

관객 반응 역시 이러한 변화와 맞닿아 있다. 관객들은 “말의 높낮이보다 말 사이의 정적이 더 긴장된다”, “논리적 충돌보다 감정의 결이 섬세하다”고 감상을 전했다. 치열한 법정극의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상대를 몰아붙이기보다 의심하는 과정을 더 두드러지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초연보다 한층 침착해진 덕분에 메시지가 더 명확하게 전달된다는 평도 나왔다.

1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회고 책자, 축하 영상, 관객과의 대화 등 부대 프로그램은 작품의 시간을 되짚어 보는 기회가 된다. 지난 10년 동안 바뀌지 않은 장면과 달라진 장면을 나란히 바라보는 것은 작품의 성장을 보는 동시에 극단 산수유라는 이름이 형성해 온 연극적 세계를 살펴보는 자리이기도 하다.


사진=극단 산수유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고전을 반복해 올린다는 것이 복제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매해의 사회 분위기, 배우들의 경험, 관객이 가진 질문들이 달라지면서 같은 작품도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2025년의 산수유는 변화의 흐름을 억지로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지금의 질문을 무대 위에 놓는다. 작품은 여전히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 얼마나 제대로 의심하고 있는가, 그리고 타인의 삶을 판단하는 일을 과연 얼마나 신중하게 대하고 있는가.

질문이 사라지지 않는 한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연극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ppbn0101@newstimes.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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