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T ZOON:IN] 슈만에서 라흐마니노프까지, 선우예권이 그리는 낭만의 궤적

전시/공연 / 권수빈 기자 / 2025-04-07 09:5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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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국메세나협회

[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5월의 뉴욕, 카네기홀 젠켈홀(JZankel Hall) 무대 위에 한국 피아니스트 선우예권(Yekwon Sunwoo)이 다시 선다. 2009년, 20대 초반의 신예로 이곳 와일홀 무대에 섰던 그가 이제는 세계 무대에서 단단히 성장한 예술가로 돌아오는 것이다. 16년 만의 귀환이다.

이번 리사이틀은 한국메세나협회의 ‘카네기홀 데뷔 콘서트 지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열린다. 지난해 첼리스트 최하영이 첫 번째 주인공이었고, 올해는 선우예권이 두 번째 주자다. 프로그램은 슈만의 「판타지 C장조 Op.17」, 쇼팽의 「뱃노래(Op.60)」, 라흐마니노프의 「악흥의 순간(Op.16)」까지 낭만주의 거장들의 내면과 시적 정서를 탐구하는 구성이다. ‘선우예권다운’ 선곡이라 할 수 있다.

1989년 인천 출생의 선우예권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감수성과 내면의 집중력으로 주목받았다.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거쳐 미국 커티스 음악원에서 학업을 이어가며 게리 그라프만(Gary Graffman)에게 사사했다. 이후 줄리아드 음악원과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석사와 아티스트 디플로마를 취득하며 탄탄한 학문적 기반을 쌓았다.

선우예권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 각인된 순간은 2017년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였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이 대회에서 우승(금메달)을 차지하며 “섬세함과 인간적인 울림을 겸비한 피아니스트”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후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벨기에 국립오케스트라, 런던 필하모닉 등과 협연하며 국제 무대의 중심에 섰다.

선우예권의 연주는 화려함보다 침묵과 호흡의 미학에 가깝다. 그는 “음악은 화려한 테크닉보다 ‘사람의 온기’를 전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무대에는 폭발적 에너지보다 감정의 정제된 깊이, 고요한 불꽃이 깃들어 있다. 특히 슈만과 브람스,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에서 빛을 발한다. 슈만의 내면적 환상, 쇼팽의 서정성, 라흐마니노프의 감정적 폭발을 그만의 통제된 울림으로 재해석한다. 그래서 평론가들은 그를 두고 “낭만주의의 언어를 현대인의 감성으로 번역하는 피아니스트”라 평한다.
 

사진= 한국메세나협회

이번 카네기홀 리사이틀은 16년의 시간과 성숙이 응축된 음악적 독백에 가깝다. 첫 곡 슈만의 「판타지」는 작곡가가 연인 클라라를 그리워하며 쓴 작품으로, 선우예권의 섬세한 감정선이 가장 돋보일 무대다. 이어지는 쇼팽의 「뱃노래」는 흐르는 리듬과 명료한 구조 속에 시적 고요가 깃든 곡으로, 그의 호흡과 페달링 감각이 진가를 발할 것이다. 마지막 라흐마니노프의 「악흥의 순간」에서는 내면의 서정과 격정의 균형이 완성된다.

선우예권은 현재 한국 클래식 음악계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조성진이 유럽 무대에서, 김선욱이 베토벤과 독일 낭만으로 자신을 구축했다면 선우예권은 시적 내면과 감성의 섬세함으로 자신만의 위치를 확립했다. 그의 음악은 조용하지만 그 속에 깃든 농도는 깊다. 2019년 이후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도 그는 한국과 해외를 오가며 꾸준히 리사이틀과 협연을 이어왔다. 특히 최근 몇 년간의 프로그램 구성에서 드러나듯 피아노의 기술보다 음악을 통한 인간 이해에 더욱 관심을 두고 있다.

선우예권은 “음악은 말로 다 하지 못한 것을 대신 전해주는 가장 인간적인 언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번 카네기홀 무대는 그가 하고자 하는 언어의 정점으로, 세월의 무게를 품은 성숙한 선율이 울려 퍼질 것이다.


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ppbn0101@newstimes.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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