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T:뷰] 사랑의 저주, 구원의 불꽃…프랑스 뮤지컬 ‘돈 주앙’ 19년 만의 귀환
- 전시/공연 / 권수빈 기자 / 2025-04-16 09:52:14
[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스페인 세비야의 밤을 배경으로, 전설적인 바람둥이 돈 주앙이 ‘사랑의 저주’에 걸린다. 오만한 쾌락주의자에서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인간으로 거듭나는 여정, 프랑스 뮤지컬 ‘돈 주앙(Don Juan)’이 19년 만에 한국 관객 앞에 다시 섰다. 지난 4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을 올린 내한 공연은 프랑스 정통 뮤지컬의 귀환을 알리는 무대였다.
돈 주앙(Don Juan)은 유럽 문학과 예술을 관통하는 상징적 인물이다. 스페인에서는 ‘돈 후앙(Don Juan)’, 이탈리아에서는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Don Giovanni)’로 불린다. 귀족 출신의 방탕한 유혹자가 결국 자신의 죄로 지옥에 떨어진다는 서사는 오래된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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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마스트인터내셔널 |
하지만 프랑스의 싱어송라이터 펠릭스 그레이(Félix Gray)는 이 이야기를 전복했다. 그가 대본과 음악을 맡은 ‘돈 주앙’(2003 프랑스 초연)은 ‘유혹자’가 아닌 ‘사랑을 통해 구원받는 인간’의 서사로 재탄생했다. 돈 주앙은 자신이 죽인 기사의 저주를 받아 ‘사랑’을 선물받는다. 조각가 마리아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지만 마리아는 이미 군인 라파엘의 연인이다. 두 남자의 사랑과 질투, 인간의 회심이 뜨거운 플라멩코 선율 속에 녹아든다.
‘돈 주앙’은 프랑스·캐나다 합작 뮤지컬로, ‘노트르담 드 파리’ 제작진이 참여했다. 연출 질 마으(Gilles Maheu), 프로듀서 샤를 & 니콜라스 타라, 작곡·작사 펠릭스 그레이로 제작진이 이루어졌다. ‘돈 주앙’ 역은 2021년 ‘노트르담 드 파리’ 내한공연에서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주목받은 지안 마르코 스키아레티(Gian Marco Schiaretti)가 맡았다. 그는 “돈 주앙은 단순한 유혹자가 아니라 사랑에 상처받는 인간이다. 이 인물의 변화는 곧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특징은 ‘성 스루(Sung-Through)’ 형식이라는 점이다. 대사가 전혀 없이 40여 곡의 노래로만 전개된다. 프랑스 뮤지컬 특유의 이중 캐스트 구조를 유지한다. 배우는 노래만 부르고, 별도의 전문 무용수가 춤을 춘다. 17명의 플라멩코 댄서가 등장해 음악과 춤이 서사의 중심을 이끈다. 안무가 카를로스 로드리게스는 “플라멩코는 단순한 춤이 아니라 감정의 불꽃이다. 등장인물의 내면을 예고하고, 사랑과 분노를 시각화한다”고 말한다.
‘돈 주앙’은 2003년 캐나다 초연 후 2004년 프랑스 공연에서 6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했다. 한국과의 인연은 2006년 내한공연으로 시작됐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성공 직후 열린 공연은 3주 동안 3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프랑스 뮤지컬 열풍을 이어갔다. 그 후 2009년에는 한국 라이선스 버전으로도 제작돼 국내 배우들이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19년 만에 다시 내한했다. 이번 투어는 서울(4.4~13), 대구(4.18~20), 부산(4.25~27)으로 이어진다.
이번 공연의 달라진 점은 무대 기술의 진화다. 조명과 LED 영상을 적극 활용해 스페인 세비야의 광장, 성당, 조각 공방 등을 시각적으로 재현했다. 무대 배경은 과장된 세트 대신 미니멀한 구조물과 조명으로 대체하고, 플라멩코의 리듬이 장면 전환의 핵심 장치로 기능한다. 음악은 기존의 집시풍 멜로디에 교향곡적 선율과 팝 감성을 가미했다. ‘CHAN¬GER(변했네)’, ‘DU PLAISIR(쾌락)’, ‘MONTERA(나의 마리아)’ 등 대표 넘버들이 여전히 강렬하게 울려 퍼졌다. 특히 ‘변했네’는 돈 주앙이 사랑을 통해 변화하는 순간을 압축한 곡으로, 관객의 마음을 깊이 흔든다.
‘노트르담 드 파리’가 인간의 죄와 사랑을 ‘비극적 낭만’으로 풀어냈다면 ‘돈 주앙’은 ‘사랑을 통한 구원’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는다. 작품의 핵심 넘버 ‘변했네’는 인간이 진정한 사랑 앞에서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담고 있다. 유혹의 신화를 구원의 서사로 바꾼 작품으로, 마치 사랑의 불길이 눈앞에서 타오르는 듯한 감상을 자아낸다. 플라멩코 군무 장면에서는 “뮤지컬이라기보다 콘서트와 무용극의 결합 같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압도적인 에너지를 뿜는다.
‘돈 주앙’은 유혹의 상징이던 한 인물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사랑을 ‘저주’로 받아들였던 돈 주앙은 결국 사랑에 자신을 내어주며 구원을 얻는다. 인간의 내면을 다룬 프랑스식 휴머니즘 뮤지컬로서 진정한 사랑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만 찾아온다는 것을 전한다.
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ppbn0101@newstimes.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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